승봉도

면적 2.22㎢, 해안선길이 9.5km이다. 1999년 12월 말 현재 75세대에 168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42km, 덕적도(德積島)에서 남동쪽으로 14km 해상에 있다. 370여 년 전에 신씨와 황씨라는 두 어부가 고기잡이를 하다가 풍랑을 만나 이곳에 정착하면서 이들의 성을 따서 처음에는 신황도라고 하였는데, 그후 이곳의 지형이 봉황의 머리를 닮아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하였다고 한다.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 수주(수원)에 속군되었고, 그뒤 인주(인천)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남양부에 속하였고, 1895년 인천부 덕적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경기도 부천군 덕적면에 속하였다가 1966년 영흥면 자월출장소에 속하였으며, 1983년 옹진군 자월면에 편입되었다.

전체적으로 구릉의 기복이 많으나, 중앙부는 분지가 발달하여 농경지로 이용된다. 선착장 뒤편에는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섬의 남쪽 백사장 뒤편에서 북동쪽으로 수령 20∼30년의 곰솔이 우거져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이며, 연안에서는 우럭·꽃게·노래미 등이 많이 잡힌다. 개펄에는 소라·고둥·바지락 등이 풍부하고, 낙지잡이도 가능하다. 길이 1.3㎢, 너비 40m의 이일레해수욕장이 있어 여름이면 피서객으로 붐빈다.
[네이버 지식백과] 승봉도 [昇鳳島] (두산백과, 두산백과)

면적 2.22㎢, 해안선길이 9.5km이다. 1999년 12월 말 현재 75세대에 168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42km, 덕적도(德積島)에서 남동쪽으로 14km 해상에 있다. 370여 년 전에 신씨와 황씨라는 두 어부가 고기잡이를 하다가 풍랑을 만나 이곳에 정착하면서 이들의 성을 따서 처음에는 신황도라고 하였는데, 그후 이곳의 지형이 봉황의 머리를 닮아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하였다고 한다.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 수주(수원)에 속군되었고, 그뒤 인주(인천)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남양부에 속하였고, 1895년 인천부 덕적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경기도 부천군 덕적면에 속하였다가 1966년 영흥면 자월출장소에 속하였으며, 1983년 옹진군 자월면에 편입되었다.

전체적으로 구릉의 기복이 많으나, 중앙부는 분지가 발달하여 농경지로 이용된다. 선착장 뒤편에는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섬의 남쪽 백사장 뒤편에서 북동쪽으로 수령 20∼30년의 곰솔이 우거져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이며, 연안에서는 우럭·꽃게·노래미 등이 많이 잡힌다. 개펄에는 소라·고둥·바지락 등이 풍부하고, 낙지잡이도 가능하다. 길이 1.3㎢, 너비 40m의 이일레해수욕장이 있어 여름이면 피서객으로 붐빈다.
[네이버 지식백과] 승봉도 [昇鳳島] (두산백과,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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